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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아직도 한국에서 모자를 만드는가

모자 하나를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손이 필요하다. 원단을 고르고, 패턴대로 자르고, 자수를 놓고, 챙을 넣고, 여러 장의 패널을 하나로 꿰맨 다음, 마지막에 열스팀으로 형태를 잡는다. 이 과정을 다 적으면 아홉 단계쯤 된다. 그런데 요즘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자의 상당수는 이 아홉 단계가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공장에서 나뉘어 진행된다. 원단은 어디서 오고, 자수는 다른 데서 놓고, 봉제는 또 바다 건너에서 한다. 싸게 만들 수는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빠져나간다.

대명A&T는 1988년 한솔모자라는 이름으로 서울 관악구에서 시작했다. 사명은 대명ING를 거쳐 2024년 ㈜대명A&T로 두 번 더 바뀌었지만, 공장은 옮기지 않았고 모자를 만드는 손도 바뀌지 않았다. 35년 동안 우리가 지켜 온 방식은 단순하다. 기획부터 출고까지, 모든 공정을 같은 지붕 아래에서 직접 한다는 것.

해외 생산이 싸다는 말의 진짜 의미

해외 생산이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량으로, 단순한 사양으로, 넉넉한 납기로 찍어 낼 물량이라면 해외가 합리적일 때도 있다. 문제는 그 ‘싸다’는 숫자 뒤에 잘 보이지 않는 비용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샘플 한 번을 주고받는 데 2주가 걸린다. 색이 조금 틀어져도 다시 보내고 확인하는 데 또 시간이 든다. 자수 위치가 1센티 어긋난 걸 뒤늦게 발견하면, 이미 컨테이너는 배 위에 있다. 이런 일들은 견적서에 적히지 않는다. 하지만 브랜드를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진짜 비용은 단가표가 아니라, 일정이 틀어질 때와 품질이 흔들릴 때 발생한다는 것을.

국내에서, 그것도 한 공장 안에서 전 공정을 관리하면 이 숨은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오전에 나눈 이야기가 오후 라인에 반영되고, 색이 마음에 걸리면 그날 안에 현장에서 다시 맞춰 볼 수 있다. 거리가 가깝다는 건 단순한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결정 속도의 문제다.

같은 손이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

우리 공장에서 캡 한 장은 평균 아홉에서 열한 개의 패널로 나뉜다. 이 조각들을 같은 결로 재단하는 일부터가 기술이다. 결이 조금만 어긋나도 완성된 모자의 각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재단을 담당하는 사람은 이 일을 오래 해 왔고, 그래서 원단을 손에 쥐는 순간 어느 방향으로 잘라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안다.

자수도 마찬가지다. 12-헤드 자수기를 여러 대 돌리지만, 결국 색을 맞추는 건 사람의 눈이다. 우리는 팬톤 기준으로 색 오차를 관리한다. 숫자로 적으면 ±1ΔE 정도인데, 이 말은 곧 브랜드가 보내 준 로고의 빨강과 우리가 놓은 자수의 빨강이 눈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정도 정밀도는 설비만으로 되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곡선을 봉제하는 일은 25년 넘게 이 일을 한 봉제사가 맡는다. 챙의 평탄도를 계측하고, 패널을 하나로 엮어 모자의 형태를 만드는 이 단계에서 완성도가 갈린다. 기계가 할 수 있는 부분과 사람이 해야 하는 부분을 구분할 줄 아는 것, 그게 오래된 공장의 힘이다.

외주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

외주가 없다는 말을 우리는 자랑처럼 하지 않으려 한다. 그건 자랑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수를 외주로 돌리면, 자수가 잘못됐을 때 책임의 소재가 흐려진다. 봉제를 밖에 맡기면, 봉제선이 터졌을 때 서로를 탓하게 된다. 모든 공정을 안으로 들이면 그럴 여지가 없다. 잘못돼도 우리 책임이고, 잘돼도 우리 손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부자재를 우리가 다 만들 수는 없다. 챙 심지나 버클, 안감 같은 부분은 국내의 믿을 만한 협력업체와 함께한다. 다만 그 협력망까지 전부 국내에 두었다. 원·부자재의 수급 경로가 안정적이어야, 지난번과 똑같은 사양으로 다시 주문했을 때 똑같은 모자가 나온다. 재발주가 쉽다는 건 브랜드 입장에서 생각보다 큰 안심이다.

직거래라는 선택

대명은 중간 유통을 두지 않고 공장이 직접 거래처와 만난다. 이렇게 하면 중간에서 발생하던 비용이 빠지기 때문에, 같은 품질을 두고 견적이 달라진다. 대략 5퍼센트 이상의 여지가 생기는데, 이건 단순히 싸게 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불필요한 단계를 걷어 낸 결과다.

더 중요한 건 대화가 직접 오간다는 점이다. 브랜드의 담당자가 공장의 담당자와 바로 이야기하면, 전달 과정에서 뉘앙스가 사라지지 않는다. 원하는 워싱의 톤, 자수의 결, 챙의 각도 같은 미묘한 것들은 몇 다리를 건너는 순간 뭉툭해진다. 공장이 곧 거래처라는 구조는 그 미묘함을 지켜 준다.

숫자로 남은 4년, 그리고 그다음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76만 개가 넘는 모자를 출고했다. 2021년 8만 개에서 시작해 2024년에는 30만 개까지, 매년 규모가 커졌다. 여기에 골프대회 갤러리용과 선수용 모자가 매년 3만 개 정도 별도로 더해진다. 이미스, 볼빅, 카스텔바작, 마크앤로나 같은 패션·골프 브랜드와 오래 함께해 온 시간이 이 숫자 안에 들어 있다.

숫자를 앞세우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숫자들이 말해 주는 건, 한국에서 모자를 제대로 만드는 일이 여전히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국내 생산은 향수나 명분의 문제가 아니라, 납기와 품질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현실적인 선택이다. 대명A&T는 앞으로도 그 선택을 이어 갈 생각이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손으로.